이 리뷰는 은사수리과학연구소에서 발간한 <월간수리과학> 2017년 2월호 "대중문화와 수학" 코너에 기고한 글을 원본으로 하며, 웹에 맞게 약간의 편집과 수정을 거쳤습니다. 또한 영화의 중요한 내용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들어가며]
1997년에 제작된 SF 스릴러인 <큐브 – Cube>는 밀실과 함정(trap), 탈출을 다룬 영화중에서 대중에게 가장 먼저 주목을 받은 영화다. 제목 그대로 정육면체(Cube) 모양의 방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조물에 갇힌 사람들이 퍼즐을 풀어가며 탈출을 시도한다는 참신한 소재와 한정된 공간에서의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큐브에 관련된 법칙이나 함정의 조건 등은 수학자인 프라비카 (David W. Pravica) 박사의 자문을 받았다고 한다. 세계 3대 판타스틱 영화제인 “시체스”, “브뤼셀”, “판타스포르투”에서 모두 수상했고, 국내에서는 1999년에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는데,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수학을 소재로한 영화로 교실에서 상영되었다는 이야기가 간간이 들려오고 있다.
[소수 (Prime Number)]
밀폐된 공간에서 눈을 뜬 사람들. 렌(탈옥수), 할러웨이(의사), 리븐(수학도), 쿠엔틴(경찰), 워스(건축가), 카잔(자폐증 환자). 이 여섯 명은 여기 온 이유도, 서로가 누군지도 모른다. 갇힌 방은 정육면체(Cube) 모양이며 6개의 면 중앙에 있는 문으로 똑같은 크기의 다른 방들과 연결되어 있다. 어떤 방은 사람을 죽이는 함정이 있고 어떤 방은 안전하다. 문제는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냐는 것이다.
자신만만해하던 탈옥수 렌이 산성 물질(염산으로 추측)을 얼굴에 맞은 후 죽자 수학도인 리븐은 비로소 각 방마다 써 있는 - 마치 일련번호 같은 - 숫자에 주목한다. 그들이 지나온 안전한 방중 하나의 번호는 (645, 372, 649). 첫번째 희생자를 만들었던 방 번호는 (149, 419, 568). 리븐은 149가 소수(prime number)임을 알아보았고 신발을 던져가며 함정의 존재를 확인했던 두 개의 방이 각각 소수인 083과 137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데카르트 좌표]
이제 나머지 다섯 명은 소수가 있는 방은 피하면서 안전한 방만 골라 이동하게 된다. 헌데 소수가 없는데도 함정이 있는 방이 나타났다. (아쉽게도 영화에서는 방 번호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쿠엔틴은 워스를 의심하게 되고, 워스는 목적도 의미도 모른 채 큐브의 설계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덕분에 리븐은 큐브가 26×26×26, 즉 17576개의 정육면체 방들로 이루어져있고, 세 가지 수로 이루어진 방 번호가 좌표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리븐의 계산대로라면 y축의 방향으로 7번만 움직이면 거대한 구조물의 맨 끝 방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여전히 소수가 아닌 또 다른 규칙은 무엇인지 모른 채 조심스레 끝 방을 향해 나아가는데 또다시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y좌표가 26보다 큰 (14, 27, 14)인 방이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겨우 끝 방에 도달한 이들은 건너편에 큰 외벽이 보일뿐 건너갈 수는 없음을 알게 된다. 탈출경로를 알아보고자 할러웨이가 나서지만 결국 떨어져 죽고, 점점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쿠엔틴과 이를 막기 위한 워스가 싸우는 와중에 아래쪽 방으로 떨어지는데, 놀랍게도 그 방에서 탈옥수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쳇바퀴를 돈 것이었다.
[치환 (Permutation)]
모두들 좌절해하고 있는데 워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분명 렌은 옆방에서 산성 물질을 맞았는데, 통로 문을 열었더니 방은 없고 빈 공간뿐인 것이다. 결국 그들은 또 다른 끝 방에 도달했던 것인데, 워스는 자신들이 쳇바퀴를 돈 것이 아니라 방이 움직이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주기적으로 들리던 기계 소리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이에 리븐은 큐브가 움직이는 규칙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게 되고 이내 치환(permutation)을 생각하게 된다.
큐브가 규칙을 가진 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리븐은 y좌표가 27이었던 방을 떠올렸다. 그 방은 26×26×26 크기의 큐브와 외벽을 연결해주는 다리역할을 하는 방이었던 것이다. 이제 그들은 다시 그 방을 찾아 돌아가기로 한다.
[소수의 거듭제곱 (Prime Power)]
하지만 여전히 소수가 아닌 방에서도 함정이 있다는 것이 걸림돌이었다. 리븐은 소수뿐만이 아니라 “단 하나의 소수의 거듭제곱으로 나타내어진 수”도 고려해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리븐은 규칙은 알았지만 숫자가 너무 커서(?) 소인수분해를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이때 서번트 증후군(<레인맨>의 “더스틴 호프만“처럼!)을 앓고 있는 자폐증 환자인 카잔이 경이로운 능력을 보여주는데, 숫자를 읽어주자마자 소인수의 개수를 대답하는 것이었다. 폭주해 날뛰는 쿠엔틴을 겨우 따돌린 후 리븐과 워스, 카잔 이 세 명은 다리 역할을 하는 (14, 27, 14)인 방에 도달하게 되고, 탈출을 눈앞에 두게 된다.
[오류 혹은 의문 또는 시비걸기]
<오류>
다리역할을 하는 방의 좌표는 (14, 27, 14)이고, y좌표가 27이 되려면 원래 숫자는 999외에는 없다. 이 번호에 치환을 적용하면 9-9=0이므로 y좌표는 움직이지 않는다. 즉, 이 다리역할을 하는 방은 다른 방과 섞일 수 없고, 외벽과 y좌표가 26인 방 사이의 어느 곳에 있게 된다. 한마디로 26×26×26 크기의 큐브 밖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절대 이 방을 중간에 거쳐 지나갈 수가 없다.
<의문>
리븐은 세 자리 자연수의 소인수를 찾는 것은 천문학적인 계산이 필요하다며 소리친다. 하지만 31의 제곱은 961, 32의 제곱은 1024이니 31까지의 숫자로만 시도해보면 될 일.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컴퓨터를 운운할 정도로 복잡한 계산은 아니다. 영화 초반부터 어렵지 않게 소수를 구별했던 수학도라면 더더욱 말이다.
<시비걸기>
카잔이 없으면 안전한 방을 찾아갈 수가 없는데 쿠엔틴은 어떻게 함정이 있는 방을 피해서 결국 쫒아와 난장판을 벌였던 것일까. 영화 전체의 완성도를 놓고 봤을 때는 이 정도는 넘어갈 수 있긴 하지만.
[수학을 걷어내고 영화를 바라본다면...]
26은 알파벳 숫자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고, 큐브에 갇힌 사람들은 숫자로 대표되는 기호의 체계에 갇혀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서로 협력하는 것이 아닌 인간을 도구로 인식하는 인물들에 냉소적인 시선을 보낼 수도 있고, 결국에는 큐브에 의해 죽은 사람보다 권력 또는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 때문에 죽은 사람이 많은 것에 씁쓸해 할 수도 있다. 감독이 열린 결말을 선택한 것처럼 영화를 보는 이들의 해석 또한 다양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큐브가 누구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왜 그들은 갇히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지만 그 점이 크게 거슬리거나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어떤 방이 앞에 나타날지, 어떤 위기가 찾아오게 될지, 또 어떻게 헤쳐 나가게 될지, 과연 누가 탈출하게 될지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단 2개의 정육면체 세트로만 촬영되었다는 (당시 헐리우드 평균 제작비의 1%에도 미치지 않는 제작비로 30배 이상의 수익을 냈다. 이 영화는 20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당신에게 적지 않은 즐거움을 줄 것이다. 러닝타임 또한 90분으로 짧으니 장르영화를 좋아한다면 적극 추천해드린다. 단, 원작의 명성에 기대어 속편이 두 편 제작되었으나 그건 안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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