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리뷰는 은사수리과학연구소에서 발간한 '월간수리과학 창간호'에 기고한 글을 원본으로 하며, 약간의 편집과 수정이 이루어졌습니다. -
[들어가며]
수학을 소재로 한 여러 영화중에서 <굿 윌 헌팅>만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영화는 드물다. 대학청소부였던 수학천재인 ‘윌’의 정신과 상담을 위해 수학과 교수인 ‘램보’는 친구인 심리학 교수 ‘숀’에게 부탁을 한다. 거절하는 ‘숀’에게 ‘램보’ 교수는 인도의 천재 수학자 라마누잔과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영국으로 불러들여 같이 연구를 한 수학자 하디의 이야기로 설득한다. 그 라마누잔과 하디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가 바로 <무한대를 본 남자>이다. 이 영화는 로버트 카니겔의 라마누잔에 대한 전기인 <The Man Who Knew Inifinity – 수학이 나를 불렀다 (한국 출판제목) | 사이언스 북스>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라마누잔의 천재성을 알아본 하디]
스리니바사 라마누잔 (Srinivasa Ramanujan, 1877.12.22~1920.04.26)은 카스트 중 최상위층인 브라만이었으나 빈곤한 삶을 살고 있었고, 수학 이외엔 다른 과목에는 흥미가 없어 학위조차 없었다. 겨우 취직을 하여 혼자 수학 연구를 계속하면서 여러 수학자들에게 자신의 연구를 보내게 되었고, 다른 수학자들과 달리 영국 캠브리지 대학 수학과 교수인 하디는 그의 편지를 꼼꼼하게 살펴보았고, 라마누잔의 연구 가운데 하디의 눈에 띈 것 중 하나는 아래와 같은 신기한 급수였다.
이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식은 일반적인 접근법으로 발산하는 급수들을 새롭게 접근한 결과물이었다. 다시 말해 자연수의 무한한 합이 실제 합이 아니라 새롭게 정의된 개념이었던 것이다. 이런 종류의 식은 현재 양자역학과 같은 물리학 분야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하디는 저 급수가 리만제타함수의 응용이며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여러 번의 서신왕래 끝에 하디는 영국으로 라마누잔을 불러들였고 같이 많은 연구를 하게 된다.
[천재 라마누잔에 관한 일화]
라마누잔의 천재적인 수에 대한 감각과 뛰어난 직관은 여러 일화에서 보여진다
영화에서는 인도로 돌아갈 때의 이야기로 나오는데 병문안을 온 하디가 자신이 타고 온 택시 번호인 "1729"가 따분한 수라고 하자, 라마누잔은 두 개의 세제곱의 합으로 나타내지고, 그 방법이 둘인 최소의 수라며 즐거워한다.
또한 인도에 있을 때 학회지에 다음과 같은 문제를 냈다.
푸는 사람이 없자 자신이 아래와 같은 답을 올렸다.
대단한 직관이 필요한 풀이이며, 아래와 같이 정리가 가능하다.
[직관과 논리의 만남이 이룬 업적]
물론 천재 멘토와 천재 멘티의 멋진 만남이었지만 두 사람은 여러 면에서 달랐다. 라마누잔은 종교적 수행을 하는 인도인인 반면 하디는 무신론자였다. 게다가 자신의 수학적 성과가 신의 영감을 통한 것이었다는 라마누잔의 말에 하디는 끊임없이 논리적인 증명과정을 요구하였다.
라마누잔은 “x보다 작은 소수의 개수를 정확히 나타내는 함수”를 찾았다고 주장했지만 하디의 검토에 의해 그 주장은 –오차가 적긴 했지만- 틀렸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 밖의 소수론과 정수론에서도 라마누잔의 오류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방법으로 연구를 한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하디의 말에 의하면 “어쩔 수없이 단편적이고 불완전”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라마누잔의 놀라운 개성과 직관력만큼은 인정을 받았다. 하디는 “라마누잔의 정리들은 참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만약 이것들이 참이 아니라면 이런 것을 생각해 낼 사람이 없을 것이므로.”라는 말로 라마누잔의 천재성을 인정해주었다. 그에 보답하듯 라마누잔은 하디의 지도 아래 스스로의 오류를 이해하게 되었고 이는 분할수 연구에서의 놀라운 성공으로 이어졌다.
캠브리지 대학교 교수인 맥마흔 소령은 라마누잔과의 우정의 암산시합에서 대부분 이겼을 정도로 계산 분야에서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는 분할에 관하여 끈기있게 연구했고, 1부터 200까지의 모든 n에 대하여 수작업을 통해 P(n)을 계산하였다. 하디와 라마누잔은 P(n)에 대한 공식을 공동으로 연구하였고 오랜 노력 끝에 오차범위가 2% 미만인 식을 만들어냈다. 20년후 수학자 한스 라데마허가 그 공식을 완전히 정리했지만 분할문제 해결은 둘의 크나큰 성공으로 이어졌다. 라마누잔은 인도인 최초로 영국왕립학회의 회원이 되었으며 캠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칼리지의 연구원으로도 선출되는 영광을 얻기에 이른다.
[짧았던 그의 삶]
1년 내내 따뜻했던 인도의 고향과는 달리 영국은 라마누잔에게는 너무 추운 곳이었다. 불규칙한 생활과 식사, 채식주의에 대한 고집으로 인해 라마누잔의 몸은 점점 쇠약해져갔다.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버린 라마누잔은 자살시도까지 하게 되며, 결국 인도로 돌아간 지 불과 1년만에 3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만다.
[실화의 힘, 그러나 아쉬움이 큰 영화]
라마누잔의 인생을 다룬 실화라는 점은 무척이나 매력적이고 힘이 있지만 영화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아쉬운 점이 많다.
변방인이 세계의 중심에 편입되면서 자기를 알아봐주는 무심한 듯 속 깊은 친구를 만나 온갖 고난과 역경을 딛고 성공한다는 스토리부터 고리타분하다. 영화에서 홀홀단신으로 영국으로 건너간 것과는 달리 많은 이들의 응원과 축복 속에서 송별식이 이루어졌다. 영국에서 일부 교수와 학생들의 냉대도 겪어야했지만 그의 방은 천재 수학자라는 소문을 듣고 모인 많은 방문객들로 붐볐다고 원작은 전하고 있다. 또한 그의 부인과의 애틋한 사랑은 원작에서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스크린에서 보이는 인도의 풍경이나 라마누잔의 아내를 바라보는 왜곡된 서양의 시선과 태도는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조금 불편하다.
영화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 종교의 차이로 인한 작중 갈등 구조가 평이한 양상을 보이고 만다. 하지만 수학 외엔 서로에게 관심 없는 것 같은 두 사람의 행보는 깊은 안타까움과 여운을 안겨준다. 때로는 수학의 진보가 엄밀한 증명보다 직관력이 뛰어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어느 수학자의 말마따나 라마누잔의 단명은 수학자로서 안타깝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수학적 성과와 직관이 신의 목소리였다고 말하는 라마누잔과 거기에 논리적 증명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수학을 종교로 삼아 평생 연구했던 하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좀 더 생생하게 느끼고 싶다면 원작도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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